제 7회

1993 인촌상 수상자

김향수
산업기술 김향수 전 아남그룹 명예회장 김향수선생은 1960년대 후반 우리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공업발전과 수출신장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스스로 그 일에 전력투구했다. 이를 위해 김선생은 세계일주 산업시찰에 나섰으며 당시 미국에서 추진하던 아폴로계획을 보고 느낀 바 있어 반도체산업에 착수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나라 부존자원이 빈약하지만 유휴인력과 고학력인재가 많기 때문에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이 적절하다는 결론을 얻었으며 이에 착수함으로써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첨단기술인력을 양성하며 △외화획득을 통해 국가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같은 신념에 따라 김선생은 1968년 3월 반도체 산업체 아남을 창업했으며 그것은 바로 한국반도체산업의 태동이었다.

그후 25년간 김선생은 부동산투기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다른 기업인들을 외면하면서, 때로는 반도체를 모르는 사람들을 일깨워가면서 오로지 <반도체 외길>에 모든 것을 바쳤다. 이제 아남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반도체 분야의 제1위 기업으로 성장하여 세계 시장 점유율 40%라는 자랑스런 자리를 확보했다.

1970년 21만불을 수출했던 아남이 92년도에는 17억7천만불을 수출했으며 그것도 단일품목 국내1위의 수출실적이었다. 창업 이후 92년까지 반도체 수출누계 102억불에 이르렀으니 김선생의 가슴에 새겼던 창업이념은 이제 굳건한 터전 위에서 보람찬 결실을 맺게 될 것으로 믿어진다.

김선생의 오늘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남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외형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사실은 김선생은 나이 60에 가까운 때에 새로운 인생에 도전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또 하나의 사실은 김선생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생소한 분야인 반도체산업에 인생의 승부를 걸었다는 것이다. 지난 60년대 우리나라 현실은 반도체가 무엇인지 아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일부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그 개념정도를 이해하는 수준이었으니 일반국민이 반도체기술이나 반도체산업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같은 상황에서 반도체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은 진실로 선견지명이 있는 선구자적 선택이었다.

참으로 용기있는 선구자적 선택을 했던 김선생은 지성일관된 노력을 반도체산업에 기울였으며 그같은 노력의 보람으로 아남은 꾸준한 성장을 계속했다. 그중에서도 74년 1월 컬러TV를 국내 최초로 생산수출하였던 일과 84년 3월에 발사된 콜롬비아호에 아남에서 생산된 반도체가 장착됨으로써 콜롬비아계획에 참여한 5만개 업체중 유일한 한국의 업체가 되었던 일 등은 우리의 전자산업발전사에 길이 남을 자취가 아닐 수 없다.
수상자의 공적, 학력 및 경력을 나타내는 표
학력 및 경력 1912년 11월 14일생

1935년 일본 니혼대학 법과 전문부 수료
1953년 아남산업 창업
1958년 제4대 민의원(전남 강진 무소속)
1968년 반도체사업 착수
1992년 아남그룹 명예회장
2003년 별세(6월2일)

7회(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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