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회

1994 인촌상 수상자

언더우드일가
공공봉사 언더우드일가 연세대 창설자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1885년 4월 5일 26세의 젊은 나이로 내한하여 1915년 10월12일 향년 57세를 일기로 소천할 때까지 31년이라는 긴 세월, 즉 그의 청춘과 전생애를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서 헌신했다.

그는 한국에 온 첫 장로교 선교사로서 1887년 9월27일 새문안교회를 창설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 경신중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였고, 오늘날 한국의 사회복지(또는 사회봉사)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한국의 개화운동을 주도해온 민족지도자를 양성하였고, 한국의 문화와 사회발전에 커다란 업적을 남기었다.

그의 선교활동은 물론 갖가지 사회봉사, 교육, 사회활동은 2세에로 연결되어, 언더우드의 집안사람들은 19세기 말의 한국 개화기에서 오늘날의 국제화시대를 맞이하기까지 한 세기가 넘도록 우리민족과 국가의 발전에 불멸의 업적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있다.

언더우드목사의 부인 릴리어스 호털여사는 의사로서 한국여성에 대한 의료봉사뿐만 아니라 여성의 개화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초대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의 외아들 원한경박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동란중 1951년 부산에서 사망하였다. 그도 그의 부친의 뒤를 이어 연세대학의 학장직을 맡아 교육계에 봉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방후 해외로부터 귀국하는 피난민들과 한국동란중 수많은 고아와 걸인, 무의무탁한 노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였다. 특히 9.28 서울 수복후 많은 사람들의 한강도강을 도와주는 등 그 당시 그러한 도움없이는 도강이 어려웠을 때 크게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는 1949년 좌익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부인이 피살되는 비운을 안기도 하였으나 결코 한국을 저버리고 떠나지를 아니하였다.

원한경박사의 4남1녀들을 모두가 한국땅에서 목회자로 혹은 교육자로 생활하면서 선친들의 유업을 이어 왔고 현재 5세대에 이르고 있다. 원한경 박사의 장남 원일한박사(사진)는 새문안 교회의 장로로서 그리고 연세대학의 교수로 혹은 이사로 전생애를 그의 선친들과 같이 이땅에서 바쳐오고 있다. 그는 부산에 있는 일신병원의 이사로서 또는 USO, Fulbright 한국재단, 한미 우호재단등의 이사로서 봉사해 오고 있다.
수상자의 공적, 학력 및 경력을 나타내는 표
학력 및 경력 1886년 한국 최초의 고아원 설립(경신중고 전신)
1887년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 새문안교회 설립
1893년 환자휴양소 개설
1915년 서울YMCA에서 <조선크리스천칼리지> 설립(문과, 수물과, 상과, 농과, 신과)
1917년 사립 연희전문학교로 발족(문과, 신과, 상과, 수물과, 응용화학과, 농과)
1923년 연희전문학교로 개명
1934년 원한경박사, 연희전문대 3대 교장 취임(~1941년)
2004년 언더우드 일가 한국떠남

8회(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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