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 인촌상 수상자
공공봉사
강성숙
수녀
강성숙(로욜라) 수녀는 1950년 평양의 제2여고를 졸업하고, 1.4후퇴 시 단신으로 월남하여 전란을 통한 체험 과정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의 삶을 살고자 성직자의 길을 택했다.
우리나라 농아교육의 표본이 된 '충주농아원'과 '충주농아학교'를 설립 운영한 강수녀의 30여년간의 봉사와 헌신은 농아들의 생활에서부터 직업재활 터전과 교육시설, 새로운 교육방법의 개발, 농아인의 사회참여, 사회적응훈련 등에 이르기까지 아니 미친 곳이 없어 '농아들의 대모'로 불리고 있다.
1985년 고 이방자 여사의 특별한 부탁과 위임으로 지체장애인 직업재활 특수학교 법인인 '명휘원'의 운영 책임을 맡아 10년간 지체 장애인의 재활과 복지와 교육과 이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는데 헌신, 300여 지체장애인의 자활과 복지교육의 산터전으로 키웠다.
'88년도 서울 장애인 올림픽 대회에는 50여명의 장애인 선수를 출전시켜 금.은.동메달은 물론 '도전과 극복' '평화와 우정'이란 휠체어 마스게임을 펼쳐 보임으로써 국내는 물론 세계장애인들과 정상인들을 감동시킨 바 있다.
또한 서울 종로2가 YMCA뒷편 명휘원 종로복지관에서 10년전부터 파고다공원 중심의 무의탁 노인 100여명에게 매일 점심을 대접했다.
강수녀는 명휘원 원장과 명혜학교의 교장을 정년퇴임한 후 서울 송파구 신천동 성당 등에서 일했다.
우리나라 농아교육의 표본이 된 '충주농아원'과 '충주농아학교'를 설립 운영한 강수녀의 30여년간의 봉사와 헌신은 농아들의 생활에서부터 직업재활 터전과 교육시설, 새로운 교육방법의 개발, 농아인의 사회참여, 사회적응훈련 등에 이르기까지 아니 미친 곳이 없어 '농아들의 대모'로 불리고 있다.
1985년 고 이방자 여사의 특별한 부탁과 위임으로 지체장애인 직업재활 특수학교 법인인 '명휘원'의 운영 책임을 맡아 10년간 지체 장애인의 재활과 복지와 교육과 이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는데 헌신, 300여 지체장애인의 자활과 복지교육의 산터전으로 키웠다.
'88년도 서울 장애인 올림픽 대회에는 50여명의 장애인 선수를 출전시켜 금.은.동메달은 물론 '도전과 극복' '평화와 우정'이란 휠체어 마스게임을 펼쳐 보임으로써 국내는 물론 세계장애인들과 정상인들을 감동시킨 바 있다.
또한 서울 종로2가 YMCA뒷편 명휘원 종로복지관에서 10년전부터 파고다공원 중심의 무의탁 노인 100여명에게 매일 점심을 대접했다.
강수녀는 명휘원 원장과 명혜학교의 교장을 정년퇴임한 후 서울 송파구 신천동 성당 등에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