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인촌상 수상자
교육
정의숙
이화학당 명예이사장
“한국 여성교육을 위해 애쓴 선배들이 닦아 놓은 터전에 작은 힘을 보탰을 뿐입니다. 여성 교육계 전체를 격려하는 큰 상으로 생각합니다.”
교육부문 수상자인 정의숙(鄭義淑·74·사진) 이화학당 명예이사장은 수상 소감을 이같이 피력하면서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정 명예이사장은 “사회에 기여하는 전문 인력이 되라고 늘 당부했다”며 “이런 소망이 조금씩 실현되는 것 같지만 흡족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올라갈수록 여성의 입지가 좁아지고 편견도 많아요. 요즘 출산율이 낮다고 우려하지만 육아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됩니까.”
그는 총장 재임 때 문리대에서 자연과학대를 독립시켰다. 초긴축 재정으로 적자재정을 흑자로 만드는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유능한 교수들을 영입하고 새 건물을 짓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교양교육에서 연구중심 대학으로 탈바꿈하는 질적 기반을 닦았다. 그는 이사장 시절에는 총장 직선제를 받아들이는 등 교내 개혁을 주도했다. 관례상 종신직인 이사장직을 내놓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던 교수와 학생들을 보호하는 데도 앞장섰다. 총장 취임 1년도 안돼 교수 5명이 계엄군에 붙잡혀 갔다. 계엄사령부를 찾아가 “꼭 필요한 분들이니 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돼 총장에서 물러났다가 한 달 만에 복귀했다. 그때 학교를 떠난 교수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기도 했다. 윤후정(尹厚淨) 이화학당 이사장은 그를 “내유외강(內柔外剛)의 교육자”라고 평가했다.
정 명예이사장은 “능력 사회일수록 인간적 성품을 반성하며 신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문 수상자인 정의숙(鄭義淑·74·사진) 이화학당 명예이사장은 수상 소감을 이같이 피력하면서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정 명예이사장은 “사회에 기여하는 전문 인력이 되라고 늘 당부했다”며 “이런 소망이 조금씩 실현되는 것 같지만 흡족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올라갈수록 여성의 입지가 좁아지고 편견도 많아요. 요즘 출산율이 낮다고 우려하지만 육아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됩니까.”
그는 총장 재임 때 문리대에서 자연과학대를 독립시켰다. 초긴축 재정으로 적자재정을 흑자로 만드는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유능한 교수들을 영입하고 새 건물을 짓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교양교육에서 연구중심 대학으로 탈바꿈하는 질적 기반을 닦았다. 그는 이사장 시절에는 총장 직선제를 받아들이는 등 교내 개혁을 주도했다. 관례상 종신직인 이사장직을 내놓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던 교수와 학생들을 보호하는 데도 앞장섰다. 총장 취임 1년도 안돼 교수 5명이 계엄군에 붙잡혀 갔다. 계엄사령부를 찾아가 “꼭 필요한 분들이니 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돼 총장에서 물러났다가 한 달 만에 복귀했다. 그때 학교를 떠난 교수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기도 했다. 윤후정(尹厚淨) 이화학당 이사장은 그를 “내유외강(內柔外剛)의 교육자”라고 평가했다.
정 명예이사장은 “능력 사회일수록 인간적 성품을 반성하며 신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력 및 경력 |
1930년 12월 30일생 1953년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1972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철학박사 1959년 이화여대 문리대 교수 1975년 이화여대 대학원장 1979년 이화여대 총장 1990년 이화학당 이사장 2000년 이화학당 명예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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