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인촌상 수상자
산업기술
김쌍수
LG전자 부회장
“같이 일해 온 사람들이 진심으로 ‘상 받을 만한 사람’으로 인정해 줄까 부담스럽습니다. 전자 분야에서 묵묵히 일만 해온 삶을 높이 평가해 줘 감사할 뿐입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집무실에서 만난 LG전자 최고경영자(CEO)인 김쌍수(金雙秀·59) 부회장의 수상 소감은 담담하고도 짧았다. ‘실천 없는 공론(空論)’을 배격하는 경영철학이 그의 말투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김 부회장은 내수 중심의 기업이던 LG전자를 수출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수출 드라이브 전략’은 특히 외환위기를 맞아 빛을 발했다. 많은 전자업체가 비틀거릴 때 LG전자는 수출을 통해 새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
“한 해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시장에서 나고 올해 말이면 가전부문 세계 3위에 진입할 정도로 LG전자는 이미 글로벌 기업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등 전 부문을 포함해 2010년까지 세계 전자·통신업계에서 ‘톱3’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김 부회장의 주도로 1996년부터 이뤄진 ‘6시그마(불량률을 제품 100만개당 3.4개 이하로 줄이는 품질관리)’ 경영은 LG전자를 매년 매출이 20%씩 성장하는 고(高)성장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원천기술이 떨어지는 한국의 유일한 경쟁력은 생산성 향상뿐”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외 기업 환경과 관련해 김 부회장은 “기업인에게 어렵지 않을 때는 없다”면서 “‘남의 탓’할 시간에 ‘내 탓’을 하며 혁신마인드를 갖고 제품과 품질의 차별화에 나서는 것이 참다운 기업인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집무실에서 만난 LG전자 최고경영자(CEO)인 김쌍수(金雙秀·59) 부회장의 수상 소감은 담담하고도 짧았다. ‘실천 없는 공론(空論)’을 배격하는 경영철학이 그의 말투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김 부회장은 내수 중심의 기업이던 LG전자를 수출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수출 드라이브 전략’은 특히 외환위기를 맞아 빛을 발했다. 많은 전자업체가 비틀거릴 때 LG전자는 수출을 통해 새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
“한 해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시장에서 나고 올해 말이면 가전부문 세계 3위에 진입할 정도로 LG전자는 이미 글로벌 기업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등 전 부문을 포함해 2010년까지 세계 전자·통신업계에서 ‘톱3’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김 부회장의 주도로 1996년부터 이뤄진 ‘6시그마(불량률을 제품 100만개당 3.4개 이하로 줄이는 품질관리)’ 경영은 LG전자를 매년 매출이 20%씩 성장하는 고(高)성장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원천기술이 떨어지는 한국의 유일한 경쟁력은 생산성 향상뿐”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외 기업 환경과 관련해 김 부회장은 “기업인에게 어렵지 않을 때는 없다”면서 “‘남의 탓’할 시간에 ‘내 탓’을 하며 혁신마인드를 갖고 제품과 품질의 차별화에 나서는 것이 참다운 기업인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공적 |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1969년에 LG전자의 전신(前身)인 금성사에 입사했다. 98년 부사장, 2001년 사장을 거쳐 2003년 1월 부회장이 됐다.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93년 석탑산업훈장, 2000년에는 동탑산업훈장과 ‘6시그마 혁신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2004년 6월에는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뽑은 ‘아시아의 스타’로 선정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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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및 경력 |
1945년 1월 2일생 1969년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88년 금성사 이사 1995년 LG전자 전략사업단장 상무 2001년 LG전자 사장 2003년 LG전자 부회장 2007년 LG마이크론 이사회 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