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인촌상 수상자
언론출판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
“1987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재직 당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보도하면서 정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똘똘 뭉쳐 연속 특종 기사를 썼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남시욱(69) 세종대 석좌교수는 40여 년 언론계 생활을 돌아보며 “당시 동아일보 보도가 6월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962년 기자 초년병 시절 소위 ‘삼양동 기사 필화 사건’으로 구속됐다 며칠만에 풀려난 적이 있다. 그 기사는 서울 성북구 삼양동 판자촌에서 63세 노인이 굶주림과 추위로 숨졌다는 보도였다. 그러나 기아로부터의 해방을 구호로 내걸었던 군사정권은 당황했고 급기야 북한 방송이 이 사례를 들어 남한 정부를 맹비난하자 정권은 반공 법상 이적 혐의로 그를 구속했다.
그는 현 정부의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도 취재 봉쇄를 통한 언론자유 침해인 만큼 꼭 막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9년 문화일보 사장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나 언론학계로 옮긴 뒤 ‘인터넷 시대의 취재와 보도’ ‘한국보수세력연구’ 등 연구서를 출간했다.
“1987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재직 당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보도하면서 정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똘똘 뭉쳐 연속 특종 기사를 썼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남시욱(69) 세종대 석좌교수는 40여 년 언론계 생활을 돌아보며 “당시 동아일보 보도가 6월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962년 기자 초년병 시절 소위 ‘삼양동 기사 필화 사건’으로 구속됐다 며칠만에 풀려난 적이 있다. 그 기사는 서울 성북구 삼양동 판자촌에서 63세 노인이 굶주림과 추위로 숨졌다는 보도였다. 그러나 기아로부터의 해방을 구호로 내걸었던 군사정권은 당황했고 급기야 북한 방송이 이 사례를 들어 남한 정부를 맹비난하자 정권은 반공 법상 이적 혐의로 그를 구속했다.
그는 현 정부의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도 취재 봉쇄를 통한 언론자유 침해인 만큼 꼭 막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9년 문화일보 사장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나 언론학계로 옮긴 뒤 ‘인터넷 시대의 취재와 보도’ ‘한국보수세력연구’ 등 연구서를 출간했다.
공적 | 1959년 동아일보 수습 1기로 기자생활을 시작해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을 거쳐 문화일보 사장을 지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과 관훈클럽 신영연구 기금 이사장도 역임했다. 언론사 퇴직 후 2005년 말 출간한 ‘한국보수세력 연구’는 1950년대 말부터 기자로서 정치 사회현장을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보수 세력의 공과를 균형 있게 다뤘다는 평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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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및 경력 |
1938년 4월 22일생 1958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979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석사 1968년 동아일보 주일 특파원 1980년 동아일보 정치부장 1987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1988년 관훈클럽 총무 1995년 문화일보 사장 2003년 세종대학교 언론학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