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인촌상 수상자
언론출판
함석헌
전 씨알의 소리 주간
함선생은 1901년3월 평북 용천군 용암포읍 중흥동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24년 동경고사에 입학, 김교신선생과 함께 무교회주의운동에 가담했다. 1928년 7월 창간된 <성서조선>의 창간동인으로 민족의식 고취에 나서 1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성서조선은 1942년 통권 158호를 내고 15년만에 폐간되었다.
1945년 11월23일에는 신의주학생사건 주동자로 소련군사령부에 의해 50일간 구금되었으며 1957년부터 <사상계>를 통한 언론활동에 진력하였다. 1958년에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 때문에 20일간 구금을 당했고 <5 · 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 등을 통해 군사정권에 항거하였다. 1970년 7월에는 자신이 주간이 되어 <씨알의 소리>를 창간,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반독재 투쟁에 나선 바 있다.
1945년 11월23일에는 신의주학생사건 주동자로 소련군사령부에 의해 50일간 구금되었으며 1957년부터 <사상계>를 통한 언론활동에 진력하였다. 1958년에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 때문에 20일간 구금을 당했고 <5 · 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 등을 통해 군사정권에 항거하였다. 1970년 7월에는 자신이 주간이 되어 <씨알의 소리>를 창간,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반독재 투쟁에 나선 바 있다.
학력 및 경력 |
1901년 3월13일생 1928년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 졸업 동인지<성서조선>창간 모교 오산학교 교사 1940년 평양송산고등공민학원장 1942년 <성서조선사건>으로 투옥 1945년 평북자치위문교부장 1947년 각학교 단체에서 성서강론 1960년 퀘이커교 한국대표 1962년 미국무부 초청으로 방미 1970년 월간 <씨알의 소리> 창간 편집인 겸 주간(1970~1980) 1980년 월간 <씨알의 소리>폐간 1984년 민주통일국민회의 고문 1989년 별세 (2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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