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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 사임서



경애하는 의장 및 의원여러분!

작년 오월 국회에서 불초한 나를 부통령으로 선거하였을 때 처음 나는 그것을 수락할 의사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국가와 민족의 운명에 대하여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현정부의 일원이 되어 무슨 유익한 공헌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현정부의 수반인 이박사는 충언과 직언을 염악하고 아첨만을 환영하며 그의 인사정책은 사적 친분으로 일관된 중에도, 자기의 하료조차 항상 시기의 눈으로 보아 모든 국사를 그 자신이 일일이 직결하려 하고, 자신이 임명한 장관을 견제하기 위하여 그의 심복인을 차관에 배치하고, 차관을 견제하기 위하여 다른 심복인을 국장에 임명하는 것과 같은 수단으로써 그의 밑에서는 아무도 가진바 역량과 포부를 발휘할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과거에 대한민국정부는 거족적인 열망과 민주우방의 기대를 저버리고 아직껏 아무런 건설적인 시정을 한 일이 없이 민생을 도탄에 몰아 넣었고 더욱 사변발발직전에는 국민을 기만하여 적의 마수하에 남겨둔 채 무질서한 도주를 감행하여 저 무수한 애국자를 희생시킨 천추의 통한사를 저질러 놓고도 한 사람도 책임을 지고 국민의 앞에 사과하는 자가 없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마치 구국의 영웅이나 된 양으로 권력을 남용하여 민주국가에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중대한 인권유린을 감행하였으며 또 국가동량의 재가 될 다수의 귀중한 자제들을 소위 국민방위군이라는 명목하에 기한에 병들게 하고 참혹하게 폐사케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대한민국정부의 무능과 부패는 이미 골육에 사무치었으며 그것은 나의 전임자이신 성제 이시영선생이 고덕과 지성으로써도 만회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 자리에 앉아 본들 이것을 광구할 아무런 자신도 성산도 없었으며 오히려 그것은 내 일신에 불명예로운 오점을 가져올 뿐이리라는 것을 나는 충분히 예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부통령 취임을 굳이 사퇴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 교섭하러 온 국회의 대표제위는 나의 이 뜻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나의 사퇴로 말미암아 부통령 선거를 재차 행하게 된다면 혼란한 정국을 일층 혼란하게 할 따름이라고 하여 심지어는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선임한 것을 거부함은 곧 민의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까지 하여 강권하므로 부득이한 사세를 이기지 못하여 장시간의 논의의 끝에 공의를 위하여 사아를 굽히고 결국 이것을 수락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나는 도로에 끝날 줄 알면서도 다소라도 국정을 바로 잡아 이반된 민심을 수습하여 보려고 국무회의에 나가게 되었고 내가 참석한 최초의 국무회의 석상에서 나는 일정한 소관사항을 가지지 않은 자유로운 입장에 있어 국민의 질고성을 비교적 용이하게 들을 수 있으므로 장차 이와 같은 민정과 민의를 국정에 반영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을 나는 직분으로 삼겠노라고 선언하여 나의 결의를 표명하였으며 그 후 실지로 그렇게 행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여 내가 국무회의에 참여하자 직시 봉착한 문제는 전 국방부장관 신성모의 주일대사임명문제이었습니다.

천하에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성모는 가장 비민주적인 권모와 술수로써 국정을 혼탁케 하여 온 장본인으로 서울 철수시에는 애국시민을 적의 호구로부터 탈출하지 못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한강을 건너려는 자를 총검으로 방해하였으며 군용금을 횡령하여 사적 정치자금으로 유용하는 등 그가 국가민족에 끼친 해독은 실로 죄당만사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러하거늘 그에게 징벌을 주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외교의 요직에 등용하여 국가를 대표하게 한다는 것은 민족의 정기를 살리기 위하여서나 정부의 기강을 세우기 위하여서나 또는 대외적인 체면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나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의 부당성을 고창하고 그 임명을 철회할 것을 극력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승만대통령은 끝내 고집하여 결국 신성모를 일본에 파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나는 국운의 기울어져감을 목전에 보고 일제이래 수십년간 흉중에 심화가 일시에 병석에 눕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나는 몇번이나 사표를 제출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의 주위에서는 국사가 어지러움은 아무 권한도 갖지 못한 부통령의 소치가 아닐 뿐 아니라 남은 임기도 머지아니한 지금 새삼스러이 사직을 함은 도리어 평지에 파란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허물을 입게 된다고 하여 만류하므로 임염뜻을 이루지 못한 채 금일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후인들 우리나라의 정세는 어찌 나로 하여금 병처에 안와할 수 있게 하였으리오.

정부에서는 여전히 위헌 위법 부당의 처사를 거듭할 뿐 아니라 소위 신당운동을 일으키어 우리나라의 애국적인 민주주의노력을 분열 약화시키기에 갖은 책략을 다하였고 이박사는 그 자신이 과거 사년간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하여 왔으므로 모든 실정의 책임은 마땅히 그 자신이 져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것을 남에게 전가하기에 급급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의 대통령당선을 꾀하고 국회를 무력화할 노골적인 의도하에 소위 대통령 직선제 및 양원제 개헌안을 제출하였습니다.

국회에서는 이것을 143 대 19표라는 압도적 다수로 폐기하고 반대로 우리나라에 진실로 민주주의적인 책임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국무원책임제개헌안을 준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개헌문제에 관해서는 나는 평소부터 국무원책임제만이 우리나라의 국정에 적합한 제도라고 믿어 왔으나 최근의 사태는 나의 이 확신을 더욱 굳게 하였습니다. 내가 부통령에 취임한 후 <각하>라는 칭호를 폐지하기로 국무회의에서 정식 결정되어 널리 공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에게 구두 혹은 서신으로 <각하>를 붙이는 자가 뒤를 끊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극단한 예로는 <부통령폐하>라는 존칭을 써서 나에게 송한해 온 자가 있을 정도입니다. 이 웃지못할 사실에 접하고 나는 우리 국민을 급속히 민주화하기 위하여서는 한 사람이 거의 황제에 가까운 강대한 권한을 쥐고 있는 현행 대통령제를 개변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겠다는 것을 통감하였던 것입니다.

영국과 같이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 있어서도 정부의 독재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책임내각제를 채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야당의 수령에게 국무총리와 동일한 대우를 주고 또 그만큼 야당의 의현을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와 같이 민도가 낮고 권력의 발호가 자심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대통령제의 산고를 충분히 체험하였습니다. 더욱이 지난번의 보결선거와 지방선거에 나타난 관권의 압박을 볼 때 우리나라에 있어서 대통령 직접선거라는 것을 곧 현집권자의 재선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가 재선되면 장차 국회는 그의 추종자 일색으로 구성될 것이며 그 후에 그는 그의 삼선 사선을 가능하게 하도록 헌법을 자재로 고칠 수 있을 것이니 이처럼 하여 종신대통령이나 세습대통령이 출현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을 희망하는 자라면 누구나 대통령직선제를 반대하고 국무원책임제를 지지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박사는 대통령직선제를 압도적 다수로 부결하고 국무원책임제를 재적의원 3/2의 연명으로 제안한 국회를 <민의배반>이니 <의회독재>니 <반민족적>이니 하여 험구욕설할 뿐 아니라 무지각한 일부 정상배를 선동하고 관력을 이용하여 소위 소환운동 국회의원규탄운동을 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시하의 사회질서를 교란하고 도처에 소요를 일으키어 국민을 불안 공포에 빠뜨리고 적비의 도량을 심하게 하였으며 심지어 난도들은 나의 거주를 포위하고 <국회를 타도하라> <국회의원을 총살하라>고 규환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단순한 정당방위사건에 지나지 않는 서민호 의원 문제를 구실 삼아 암암리에 국회와 군부를 이간 반목케 함으로써 폭력행사에의 길을 닦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그의 일련의 행동은 가장된 민의와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건전한 이성을 말살하고 절대권력을 장악하려는 전형적인 독재주의 노선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태를 와석방관하지 아니하면 아니되는 나의 안타까운 심정은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나는 이때까지도 아직 대한민국의 최고집정자가 그래도 완전히 사직을 파감하려는 반역행동에까지 나오리라고는 차마 예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돌연 비상계엄의 조건이 하등 구비되어 있지 아니한 임시수도 부산에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소위 국제공산당과 관련이 있다는 허무맹랑한 누명을 날조하여 계엄하에서도 체포할 수 없는 오십여명의 국회의원을 체포 감금하는 폭거를 감행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국헌을 전복하고 주권을 찬탈하는 반란적 쿠데타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만약 그에게 일편의 애국심이 있다면 지금이 어떠한 시기이며 우리가 처하고 있는 환경이 어떠한 것이길래 국가의 비운과 민생의 고난도 모르는 척 일신의 영욕을 위하여 어찌 이다지도 난맥의 행동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에 있어서 나는 이 이상 단 하루도 이승만 정부에 머물러 있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나의 지위가 비록 시위표찬에 지나지 않고 내가 한번도 현정부의 악정에 가담한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의 변변치 않은 이름을 이 정부에 연하는 것만으로 그것은 내 성명 삼자를 더럽히는 것이며 민족만대에 작죄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에 사표를 국회에 제출하며 나를 선거해준 의원동지 여러분과 국민의 앞에 내가 오늘까지 무위하게 국록을 받았음을 깊이 사할 따름입니다. 원컨대 앞으로 국가민족의 운명을 염려하는 일개평민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전 이 군주적 독재정치화의 위협을 제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함으로써 전 자유세계의 동정과 원조를 획득하고 항치적인 자유와 평화의 신약을 이 나라 이 겨레에 가져 오도록 하기 위하여 국민대중과 함께 결사분투할 것을 맹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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