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엽전을 삼킨 도련님



仁村은 어려서부터 장난이 몹시 심하고 명랑하여 남을 잘 웃겼으며 인정이 많았다고 한다. 여름 밤이면 동네 아이들과 함께 옷을 벗고 몸에 검정칠을 하고 참외서리를 다녔는데 옷을 입고 참외 밭을 들어가면 달빛이나 별빛에 비춰 보이기 때문에 벗은 몸에 검정칠을 하고 참외서리를 다녔던 것이다. 참새를 잡는다고 집집마다 처마 밑 구멍을 쑤셔 놓는가 하면 작대기로 대나무 밭을 두들겨 대나무줄기를 망쳐 놓기도 했다고 한다.

참새는 원래 밤눈이 어두워 대나무 밭에 몰려 앉아 잠을 자는데 작대기 찜질을 당하면 앉은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갈 뿐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눈먼 참새는 대나무 밑에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동네에 무슨 소란스런 일이 일어나면 으레 그 중에는 판석 소년이 끼어 있게 마련이었다. 키는 중키에 몸집이 작은 평이었으나 판석(인촌의 어릴적 이름)소년은 다부진 편이었다고 한다. 씨름판이 벌어져서 아이들끼리 힘 겨루기를 하면 판석은 자기보다 큰 아이들을 번번이 들어 넘겼는데 머리가 좋아 다른 아이들보다 씨름 기술을 먼저 익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한테는 지기 싫어하여 힘이 달려 넘어져도 무슨 수를 쓰던 결국에는 이기고야 말았다고 한다. 지혜가 많았고 참을성과 끈기, 게다가 승부에 대한 남다른 집념이 있었다. 장난꾸러기 판석 소년의 지혜는 오성과 맞먹을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 사랑에서 공부를 하던 판석 소년은 배가 아프다며 뒹굴기 시작했다. 집안 어른들이 놀라서 나왔다.

"왜그러니? 응? 점심 먹은게 체한 모양이로구나. 응?"

놀란 어른들이 다가들어 몸을 흔들었다. 판석은 배가 아프다며 만지지도 못하게 하였다.

"이거참, 멀쩡하게 글공부를 하던 녀석이 왜 이러지? 곽란이 난 모양이다. 어디보자. 응?"
어떤 아들인가. 대를 이을 장손이 아프다고 뒹구니 집안 모든 사람들은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의원을 불러 오너라. 아무래도 얘가 곽란이 난 모양이니 사관침이나 빨리 맞아야겠다."
어머니가 청지기에게 명했다. 그러자 소년이 다급한 소리로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침이라구요?"

"응, 사관을 맞아야 한다."

침이란 말에 소년은 펄쩍 뛰더니 고개를 흔들며 그게 아니라 했다.

"체한 것이 아니라 실은……실은……"

"실은 뭐야?"

"엽전을 입에 넣고 누워서 놀다가 그걸 그만 삼켜버렸어요."

"뭐가 어째? 엽전을 삼켰다구? 아이구 큰 일이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집안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어머니, 내가 그 전에 들었는데 잣이나 호두를 먹으면 쇠붙이가 녹는대요."

"뭐야? 호두? 그게 정말이냐?"

"네, 그렇다고 해요."

소년의 말을 듣자 어머니가 찬방으로 달려 가더니 깊숙하게 숨겨 둔 호두 바구니를 들고 왔다.

"여기있다., 어서 먹어봐. 응?"

그러자 소년은 일어나 조청을 찾는 것이었다. 조청까지 가져다 주자 소년은 호두를 조청에 찍어 한 자리에서 열 댓개를 집어 먹었다.

"괜찮아? 응?"
모두 근심스럽게 쳐다보자 소년은 한쪽 조끼 주머니에 호두를 가득 집어 넣고 멀쩡하게 일어나며 다른 조끼 주머니에 든 엽전을 꺼내보였다.

"엽전을 삼킨건 내 입이 아니구 바로 이 조끼 봉창이었어, 하하하"

"뭐가 어쩌고 어째? 이놈 판석아"

어른들이 불호령을 내리자 소년은 호두 든 주머니를 움켜 쥐고 대문 밖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집안 큰일 때 쓰려고 장만해 둔 호두를 어른들 몰래 한 개 한 개 꺼내 먹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바구니째 없어졌던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깊은 곳에 숨겨둔 호두를 찾을 길이 없었다. 먹고는 싶고 그래서 그런 소동을 피웠다는 것이다.

판석 소년은 그렇게 개구진 장난꾼이었지만 명석하고 글공부에는 무척 열심히었고, 때로는 어른스런 면이 있었다고 한다. 소년이 일곱 살 되던 해부터 부모는 아들을 위해 훈장을 청해 모셨다고 한다. 동네 서당을 다니게 하지 않고 독선생을 모신 걸 보면 그만큼 집안이 넉넉해서였기도 했지만 아들에 대한 부모의 교육열이 남달랐음을 보여준다.

사랑은 곧 서당이었고 학생은 단 하나, 판석 소년뿐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학생수가 칠팔 명으로 불어나 훈장님을 놀라게 했다. 공부하겠다고 온 아이들은 하나같이 남루한 입성에 버선 하나 제대로 신은 아이가 없었고 공책 하나 들고 있는 아이가 없었다.

"판석아, 이게 어찌된 일이냐? 이 아이들은 뭐냐?"

"훈장님 밑에서 공부할 제자들입니다."

"제자?"

"예. 저만 공부하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하는게 좋잖아요? 이 아이들은 모두 가난한 집 아이들여요. 공부를 하고 싶어두 글 세를 못 내니 어떻게 서당을 다녀요? 그래서 거저 배우게 해 줄 테니 우리 집으로 오자구 한거지요"

"허허 저런"

훈장도 할 말이 없는지 나무라지는 않았다. 훈장으로부터 그 말을 들은 부모도 아들이 어른스럽다고 흐뭇해 했다고 한다.

소년은 가난한 동네 아이들에게 공부도 시켜주고 공책이 없는 아이들은 제 돈으로 종이를 사서 매주기도 하며 그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면 자기 일처럼 좋아 했고 때로는 시험을 보게 하여 자기 손으로 갑을병정을 매겨서 상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仁村의 그 사리보다 공익을 위해 모든 것을 베푸는 헌신적인 희생정신은 벌써 일곱 살 소년시절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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