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장기집권은 스스로 무덤 파는 것

김성수 부통령 시절 (사진제공 국가기록원) 김성수 부통령 시절 (사진제공 국가기록원)

"목표는 이제 하나, 관철이 된 셈일세. 남한만이라도 총선거를 실시, 정부가 세워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여. 하지만 남북의 분단을 막아야 하는 다음 목표가 있네. 소련군이 싫다, 공산당이 싫다 해서 월남한 월남민이 지금 얼만 줄 아는가? 4백 5십만일세. 그들의 의사를 대변해 줄 사람도 국회에 들어가야 하네"

"조민당의 이윤영씨를 두고 하시는 말씀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선거위원회에서는 월남동포들을 위한 특별 선거구를 마련해 준다고 하잖습니까? 헌데 왜 그 걱정까지 하시지요?"

仁村은 정치현실에 환멸을 느끼며 외로운 투병생활을 계속해야만 했다.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유일한 낙이 있다면 <고대>의 서관 신축공사장을 찾는 일이었다.

그토록 병마와 고독한 싸움을 하면서도 仁村은 정치문제만 나오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머지 않아 이승만은 종신집권을 위해 <삼선개헌>을 하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어느 날 병석에서 仁村은 혼잣말로 말하고 있었다.

"이승만이 지금까지 한 짓은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삼선개헌만 하면 그 때는 스스로 파놓은 무덤에 들어갈 줄 알아라"

그러자 부인은 생각없이 받았다.

"남들은 그런가 보다 하던데 당신은 삼선 얘기만 나오면 왜 화를 내세요?"

그러자 仁村은 대노하여 호통을 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썩 물러가요. 보기 싫어요!"

발병 후 화를 내는 일은 가끔 있었지만 그렇게 정색을 하고 진노한 일은 처음이었다. 젊어서 같으면 소박을 맞았을 지 모르겠다고 생전의 부인은 술회했다.

이승만 타도

누구든지 선생 앞에서는 남의 흉을 되도록 꺼내지 아니 하였다. 별로 좋아 하시거나 맞장구를 치시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남의 험담이 나오면 그 분은 가만히 듣고만 계셨다. 그러나 6.25 이후부터의 이승만에 대한 仁村의 평가는 달랐다. 서울 환도 후에 계동에 계실 때인데 병환을 이기려고 걷는 연습을 하셨다.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거닐면서 <이승만 타도>를 외치셨다. 지팡이로 땅바닥을 치면서 혹은 마당을 빙글 돌면서 이승만의 독재정권을 규탄하는 말씀을 하시곤 하였다.
한민당 정치인 배섭(裵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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