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일화

경성방직
민족자본 민족기업 ‘경방’을 세우다

인촌 김성수는 청년기 일본유학의 경험을 통해 민족자본으로 만든 기업이 있어야만 민족의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신념은 경성방직 설립으로 이어졌다. 경성방직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방직공장이자 민족기업이었다.

김성수는 식민지시대 의류와 직물 섬유 대부분이 일본으로부터 수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한국의 산업 활성화를 위해 방직산업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경성방직 설립의 첫단계는 1917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경성직뉴주식회사를 인수한 것이었다. 김성수는 2년전인 1915년 중앙학교를 맡으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국산 무명옷을 교복으로 입게했을 때 이미 한국의 직물 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각오했던 터였다.

김성수는 경성직뉴를 근대적 면 옷감 생산 시스템으로 개조, 중앙상공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1918년부터는 면의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19년10월 그는 경성직뉴와 별도로 경성방직을 설립했다. 한국 자본으로 세워진 순수한 민족 기업이었다. 김성수는 민족 기업의 의미를 살리려면 더 많은 한국인들이 경성방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경성방직을 주식회사로 만들었던 것이다.

경성방직은 당시 한국의 산업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으로부터 면직물 수입이 증가하면서 한국의 면직물은 거의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김성수의 경성방직 설립은 식민지 조국의 그같은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대규모 생산을 시작한 일본인회사 조선방직에 맞서 한국의 면직물 산업과 한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것은 경성방직이 민족자본으로 세운 민족기업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순히 하나의 기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조국을 근대화시키고 민족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독립운동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김성수는 이후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경성방직을 발전시켰다. 1923년부터 1935년까지 경성방직은 민족 산업의 파수꾼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그리하여 1939년엔 중국 만주에도 공장을 세움으로써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투자를 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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