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하나의 세계-미래의 도전
육군대령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을 때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어느 미국대통령후보의 연설중에서 <하나의세계>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물론 그 후보는 전세계가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썼으나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세계는 평화속에 하나가 됐다. 세계를 하나로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은 통신수단의 발달이다.
덕분에 우리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소식을 신속하게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오히려 이해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세계정세가 일반인들의 인식수준을 앞질러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정세가 안정의 시대에서 불안정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계질서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유고연방과 소련제국의 와해이다. 생존시 티토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사후에도 유고연방이 존속될 것임을 확신했었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빗나갔다. 그것은 그가 소련의 와해를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그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 각국은 자유와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게 됐고 이런 가운데 잠재됐던 민족 문제가 대두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가장 큰 실책은 정치구조의 변혁없이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소련이 맞고 있는 지금과 같은 혼란기에 가장 염려되는 것은 쿠데타 주도세력의 하나였던 군이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다. 서방 각국은 소련군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경제원조와 함께 소련군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먼저 군비감축을 실행해야 한다.
또 하나의 불안요인은 중동지역이다. 아랍제국이 올해초 발발한 걸프전에서 입은 상흔을 치유하는 데는 수십년이 걸릴것이다. 오는 10월30일 역사적인 중동평화 회담이 열리지만 이스라엘 유엔안보리결의를 이행하지 않는 한 진정한 중동평화는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불안정한 요인들을 열거했으나 한편으로 안정을 향한 움직임도 있다. 유럽통합이 바로 그것이다.
93년 유럽공동체(EC)와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이 경제통합을 이룩하게 되면 인구 3억8천만의 세계 최대 경제공동체가 탄생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유럽통합의 목적이 점차 극심해지는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유럽을 요새화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하지만 유럽통합의 목적은 역내 국민전체의 공존공영에 있다. 현재 EC에 가입하지 못한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도 경제상황이 안정되면 가입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유럽통합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나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대한 도전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으나 EC가 다른 경제권과 갈등을 겪을 소지가 있는 것은 농산물 문제밖에 없다. EC는 다른 경제권과의 관계증진을 위해 개발도상국과 신생국에 대한 원조를 계속할 것이다.
21세기에는 아태지역이 세계질서의 축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일본은 세계최고의 기술과 판매력을 갖고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국가이나 외국자본유치를 통해 산업구조를 선진화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농산물의 자급자족도 이뤄지고 있다. 중국은 무엇보다도 무궁무진한 석유 가스 석탄 광산물 등의 천연자원을 갖고 있으며 2000년이 되면 인구는 12역5천만에 이를 것이다. 일본의 첨단기술과 판매력에 중국의 부존자원과 노동력이 결합되면 지금까지 세계가 목격한 바 없는 거대한 경제권이 탄생할 것이다. 일본은 이미 합작투자 등을 통해 중국경제활동의 26%를 담당하고 있다. 하나가 된 세계에서 이 동북아경제권의 도전을 누구도 피할 수 없다. EC가 유럽통합을 서두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