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기념강좌

제6회 대처리즘, 그 이데올로기와 실재 / 아시아 경제 정치 전망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대처주의의 이념과 실제 또 다른 주의?
나는 대처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이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와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많은 주의(ism)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으며 사람들이 그것들을 그리워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조만간 사회주의와 유럽연방주의도 그렇게 사라진다면 나는 더욱 기쁘다. 사람의 이름에 주의가 붙여진 것 중에서 내가 많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 그것은 드골주의(Gaullism)이다.

드골장군과 나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드골은 위대한 생각을 지닌 위인이었으며, 조국의 사기를 부활하고 조국의 이익을 수호한 지도자이며 애국자였다. 만약 내가 드골과 같은 방식으로 기억된다면 기쁘겠다.

그러나 드골장군에 대한 존경심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처주의는 드골주의보다 정치와 경제의 핵심에 대해서, 그리고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훨씬 깊이있게 언급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내가 대처주의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나와 내 동료들이 대처주의를 재발견했을 뿐이다.

내가 수상으로 재임한 11년 반 동안 영국에서 실시할 수 있었던 가치와 생각과 신념들은 내 인생의 과거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내 인생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에 의해서 보강되었다.

나의 신념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이상은 첫째 나의 가족에 의해서 형성됐다. 기독교도인 우리 가족은 개인의 존엄성을 믿었으며 우리들 각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은 값 있는 유일한 삶은 노력하는 삶이라고 배웠다. 우리들은 잘못된 것에 대해서 단순히 저항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배웠다. 오늘날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 낡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의무감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말이 낡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관점은 또한 영국 자체와 영국의 역사, 특히 정치사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항상 정치에 매료됐었다. 나에게 있어서 영국이라는 이름은 자유와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와 동의어였다. 우리는 특히 공정성과 형평성에 기초하고 있으며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은 훌륭한 재판관들의 현명한 결정에 의해서 오랫동안 발전해 온 불문법(common law)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변호사가 된 이후 자유와 번영,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좋은 가치들이 법 없이 불가능하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유는 나와 내 세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들의 삶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서 어떤 가치관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그러한 가치들을 도덕적으로 옳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반드시 그러한 원칙들에 입각해 행동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위선일 것이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성인 조차도 원칙에 완전히 충실하게 살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성장한 영국의 문화에서는 위선보다 더 나쁘고, 해로우며, 파괴적인 한 가지만은 피하라는 것이 강조되었다. 그것은 냉소주의이다. 정치에서 냉소주의는 정말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며, 이것은 서구의 정치가 잘못된 원인이다. 원칙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인간의 삶 자체는 평가절하된다.

인간에게 대단한 해로움을 끼쳤던 사회주의가 사람들에게 존엄성과 안전을 보장하려는 인본주의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은 역사의 대단한 역설 중의 하나이다. 문제는 인간의 자유를 제약함으로써 삶의 안전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된 것이다. 국가가 강해지고 개인들이 무책임하게 되었을 때 사회가 와해되고 침체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일이 영국에서도 일어났다.

우리가 이러한 위험에 대해서 경고 받지 않았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위대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사회주의는 <농노제로 이르는 길>(The Road to Serfdom)이라고 기술하였다. 러시아 사람들은 수 십년 전에 자신들이 농노제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칼 포터(Karl Popper)는 <열린 사회(The Open Society)>라는 저서를 통하여 독재체제는 단기적으로 재화를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지만 서구의 진보를 촉진시킨 혁신 및 기술적 비약을 가능하게 한 표현과 토론의 자유를 억압하기 때문에 얼마 안가서 자유기업세계에 뒤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집단주의적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은 그것이 인간정신을 부정하고 개인적 책임을 <국가>의 판단으로 대체시키고 있다는 점을 잊었다. 내가 언급한 바와 같이 아마 하이에크의 <농노제로 이르는 길>이라는 책이 내포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의미는 그것이 <모든 정당의 사회주의�>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사회주의자 가운데는 다양한 집단이 있다.

1974년2월 영국의 보수당이 권좌에서 물러 났을 때 영국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많다는 점이 분명했다. 보수당이 추진했던 정책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보다는 이러한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데 기여 했다. 우리 보수당은 사회당의 정책에 도전해야 했을 시기에 사회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죄를 범했다. 그 결과 경제성장이 지체되고, 경영과 산업의 경쟁력이 손상받았으며, 영국 국민들의 장점들이 발휘되지 못했다. 그래서 1974년 키스 조셉(Keith Joseph)과 나는 <정책연구센터>(The Center for Policy Studies)라는 연구기관을 설립했다. 정책연구센터는 자유시장과 제한정부, 그리고 법의 준수라는 시각에서 보수당의 정책을 재고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5년 나는 보수당의 당수가 되었다.

대처주의의 철학은 이러한 개인적 경험과 집단적 경험 속에서 생겨났다. 그리고 대처주의는 지성의 산물임과 동시에 가슴의 산물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쇠퇴와 굴복은 영국에게 해롭다고 믿었다. 우리는 자유를 신장시키고 영국을 보다 번영되고 영향력있게 만들기 위해서 영국인들의 가치관과 직업윤리, 자유에 대한 사랑과 정의감이 다시 한 번 동원 될 수 있다고 믿었다.

1979년 우리 보수당이 집권했을 때, 영국의 새로운 보수당 정부는 원칙과 정책에 입각하여 사회주의 정책을 되돌려 놓고 자유의 영역을 확대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만약 우리가 성공하면 다른 나라들도 뒤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성공했다. 다른 나라들이 뒤따랐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아직도 우리 뒤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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