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회 부시정부 정책과 북한
미국은 아시아의 전통적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다. ‘수수께끼 같다, 미스터리 같다’는 이야기도 많다. 몰이해 때문에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특히 북한은 어느 국가보다도 폐쇄적이고 은둔적이어서 더 읽기 어렵다. 북한과의 협상은 마치 안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 블랙박스와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최근 들어서는 미국 행정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대두된다.
주변국들은 계속 직접 대화를 요구하는데도 미 행정부는 고개를 흔든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 행정부의 지난 10년간 대북정책을 돌아봐야 한다.
1980년대부터 북한은 핵개발을 추진해 왔다. 5MW, 50MW, 200MW급 원자로로 단계를 높여 왔다. 1990년대 초에 이미 핵개발을 시작했으며 2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했다.
당시 북한의 핵 행보에는 정치적 배경이 군사적 배경 못지않게 중요했다. 당시 소련은 군사 정치적으로 더 이상 북한을 보호할 주체가 되지 못했다. 중국과의 연대도 약해졌다. 한국과의 경제 격차는 엄청났다. 북한은 미국이야말로 세계의 유일한 슈퍼 파워라고 인식하고 그때부터 미국을 향한 외교공세를 편 것이다.
결국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요구 등의 단계를 거쳐 1993년에 핵 위기가 발발했다. IAEA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했고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 지금과 매우 흡사한 상황이 10년 전에 벌어진 것이다. 미국은 그때부터 주변국과의 공조 속에 양자협상에 들어갔다. 미국은 양자협상과 더불어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의했다. 결국 1994년10월 북한이 플루토늄을 기반으로 한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하는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채택됐다. 북한의 핵 포기는 한국 미국 국제사회는 물론 북한에도 혜택을 줬다.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통해 북한은 미국과 특별한 관계에 돌입할 수 있는 언약을 받았다고 믿게 됐다.
사실 핵확산을 막기 위한 미국의 전략은 매우 오래됐다. 채찍과 당근을 사용하고 동맹관계, 국제 제재, 국제여론 조성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이 구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없는 상태였다. 외교관계도 없고, 핵기술 공급자도 특별히 없었다. 간접적인 영향력 행사도 어려웠다. 1993년 직접 대화에 나설 당시만 해도 선제 무력공격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북-미 관계는 90년대 중반에 다시 나빠졌다. 연락사무소 개설이 이뤄지지 않는 등 북한이 원한만큼 미국과의 관계 개선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은 1998년 10월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중동에 미사일을 수출했다. 핵원자로 비밀가동 정보도 입수됐다.
이를 통해 북한은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을 미국에 상기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북한의 의도와 목표에 대해 네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첫째, 북한은 처음부터 핵개발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핵무기 확보 의지가 투철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추정은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을 때를 대비해 대미 협상에서의 우위 확보 수단으로 핵개발을 한다는 것. 세 번째는 농축우라늄 시설 관련 프로그램을 외국에 다시 수출할 목적이라는 추정이다. 네 번째는 미사일을 수출한 파키스탄에서 돈 대신 우라늄 농축기술을 이전받기로 했을 가능성이다.
2000년 말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북-미 관계는 급격히 하강국면에 들어섰다. 부시 행정부는 북-미 관계의 재검토를 지시했다. 물론 대(對)북한 정책의 방침 자체는 페리보고서를 통해 설정된 것과 비슷했으나 부시 행정부는 그 방침을 실행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특히 9·11테러가 부시 행정부 내 핵심 국가안보 주체들에 미친 정신적 충격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미국의 관점에서 적은 알 카에다라는 한 조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모든 테러 관련 조직,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불량국가들도 견제 대상에 포함됐다.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 중 하나로 언급한 뒤 북-미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특히 테러국가에 대한 선제공격 불사 발언이 잇따르면서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제임스 켈리 특사가 방북해 북한이 핵개발 중임을 듣고 돌아온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의도와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불가침조약, 경제지원, 무역투자, 김정일체제의 생존을 위한 모색….
나는 북한이 이 모든 것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미국이 진지하게 협상에 임한다면 북한이 진정 핵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할 용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전 핵 위기 당시에도 대북 협상에 대해 행정부 안팎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다. 북한의 협박에 왜 유화정책을 쓰는가, 잘못 길들이고 있다, 대통령이 너무 나약하다는 등.
현 부시 행정부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거부했다. 1993년 당시 나는 미국이 양보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현 행정부에도 제안해 왔다. 북한의 포기만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 행정부는 ‘이상적(idealistic)’ 차원을 중시하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첫 번째 대북 전략은 북한 문제의 국제화 전략이다. 안보리를 통해 북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데 이는 굳이 제재를 위한 준비라기보다는 이슈 제기에 가깝다.
두 번째는 6, 7개국의 다자간 틀을 통한 협상이다. 이를 통해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북한을 설득하는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세 번째 전략은 시간을 끄는 것이다. 네 번째는 정 이것저것 안되면 무력적 위협을 통해서라도 북한의 핵 포기를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도덕적 철학적 이유 때문에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나서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직접 협상 없이, 필요하면 암묵적으로 무력 사용의 암시를 줘서라도 북한의 핵 포기를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은 어떤 단계가 올까. 타이밍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마도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실시가 될 것이다. 그러면 동맹국들은 나름대로 무력적 대응을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일본과의 긴밀한 협의 없는 무력 사용 가능성은 거의 생각할 수 없다. 일부 극단주의자는 단독적으로 일방적 조치를 취하자는 주장을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미국이 직접 대화에 빨리 나서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모든 동맹국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서 결정하면 무력 사용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 불가침조약 체결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경제적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북한과 어떤 합의를 한다면 이번에는 반칙을 안 할까. 북한은 할 수 있으면 (반칙을) 할 것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북한과의 직접 대화가 협박에 굴복하는 유화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외교적 노력과 도덕적 노력은 다르다. 국제관계에서 도덕에 집착하는 것은 불필요한 분쟁을 낳을 수 있다. 외교적 노력은 인류의 삶 개선을 위해 양보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