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기념강좌

제 19회 네덜란드 노동시장의 개혁

빔 콕 전 네덜란드 총리 네덜란드는 사회적 대화와 합의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이런 전통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경부터 시작됐다. 5년간의 독일 점령에서 해방된 네덜란드인들은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했다. 나라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노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의’를 이끌어내야 했다.

15명의 노동자 대표, 15명의 사용자 대표, 15명의 정부추천 인사로 구성된 경제사회협의회(Social Economic Council)가 이런 전통을 계승한 대표적인 조직이다. 이 조직은 경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대해 정부에 조언을 한다. 한국의 노사정위원회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네덜란드 경제사회협의회 구성원은 50세 이상으로만 구성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기업 내에도 이와 같은 협의조직이 구성돼 있다. 기업 경영진은 회사의 중요 사안에 대해 결정할 때 반드시 협의체에서 조언을 받아야 한다.

이 같은 협의와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다. 사람들이 서로 불신하는 것은 서로의 목적과 이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신은 네덜란드에도 당연히 존재하며 이에 따른 분쟁과 파업도 발생한다. 그러나 대화가 실패했을 때만 이런 수단에 의존한다는 것이 네덜란드 사회의 불문율이다.

‘바세나르 협약’이 있기까지

네덜란드 사회는 경쟁력 있는 경제와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 체제를 동시에 추구한다. 장애인과 실업자들에게 제공되는 사회복지는 더욱 결속력 높은 사회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세금과 부가적인 사회적 비용이 든다.

2차 대전 이후 경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임금과 물가는 낮게 정해졌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경제가 다변화하면서 네덜란드는 급속한 임금인상과 물가상승을 경험했다.

이 때문에 조선, 섬유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고 이들 산업의 주도권은 아시아 국가로 넘어갔다. 실업률이 증가하고 경제적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두 번의 오일쇼크가 경기침체를 불러왔으며 특히 청년실업률이 급격히 증가해 20% 수준까지 상승했다.

이런 사회, 경제적 상황을 지켜보면서 1982년에 나는 ‘완전히 새롭고 극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시작된 ‘바세나르 협약’은 놀라운 내용을 담게 됐다. 노조는 일정 기간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했으며 젊은이들에게 일자리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근무시간도 줄여야 했다.

대다수 사용자와 근로자들이 바세나르 협약에 찬성했다.

정부는 재정 및 세제로 이 협약을 지원했다. 이 같은 노사정 합의의 효과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까지 큰 힘을 발휘해 경제를 다시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복지 시스템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변형됐다.

바세나르 협약에 따라 노사가 참여해 만든 노동재단(Labour Foundation)은 높은 노동유연성과 노동안정성을 동시에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90년대 후반 네덜란드의 노동자들은 더 많은 직장을 갖게 됐고 경제는 과열을 우려할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경제의 미래는 생산성에 달렸다

최근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하이테크 산업을 통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유럽경제의 미래는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 생산성을 얼마나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

사회복지 시스템은 어느 정도 경제의 가장 본질적 문제이면서도 유지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더욱 많은 효율성이 요구되며 정부는 이에 맞춰 정책을 입안해야만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럽 국가들은 이런 위기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문화적 배경과 전통이 유럽과 다른 만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은 산별 노조가 노동운동의 주력이지만 한국은 아직도 회사별 노조들이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부터 사회 복지와 서비스 부문 같은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개발해야 한다.

개혁의 척도는 협력과 커뮤니케이션, 합의의 인정 수준 등을 고려해야 한다. 모든 성공적인 사회적 대화의 주요한 열쇠는 바로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것이 경제적 발전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제 이 출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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