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회 사이버시대의 美 안보정책
케리 장관이 한국 대학에서 강연한 것은 처음이다. 케리 장관은 ‘사이버 영역에 대한 미국의 세계 정책’을 주제로 한 특별강연에서 “(북한을 포함해 세계에) 개방적이고 안전한 인터넷이 전기, 휴대전화만큼이나 골고루 퍼져 도입될 때 우리가 성공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북한 중국 등에 완전한 인터넷 자유가 보장될 수 있도록 미국이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케리 장관은 “미국은 개방되고 안전한 인터넷이 외교정책의 주요한 요소라고 결정했다”며 “미 국무부는 (이와 관련한) 곧 새로운 외교구상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인권 상황이 열악한) 정부들이 좀 더 개방적인 방식을 취한다면 번영에 이를 것이라고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확산을 기치로 삼아 온 미 정부가 이제는 세계를 상대로 한 사이버상의 자유와 인권 확산에도 개입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른바 ‘사이버 외교’의 시대가 시작될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사이버 안보의 우려 대상국이 북한과 중국임을 시사했다.
케리 장관은 “북한처럼 극단적인 국가가 많지 않지만 정치·사회·종교적 표현의 자유를 막으려는 정부가 있다. 일부 정부는 비판 세력을 침묵하게 하고 국민들이 읽고 쓰고 듣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가 2월 중국 베이징(北京)의 미국대사관에서 중국의 반체제 블로거들을 만나 인터넷 자유와 인권을 논의했던 만큼 이는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지난해 뉴욕타임스 등 비판적 기사를 게재한 언론사 특파원의 비자 연장을 제한하고 인권 문제 비판에 “개입하지 마라”며 민감하게 대응했다. 케리 장관은 “21세기의 세계는 인터넷이 시민들을 위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정부와 자국민 통제를 위해 인터넷을 제한하는 정부로 크게 나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한미 양국은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케리 장관은 “한국과 미국은 모두 인터넷과 사이버 이슈를 ‘뉴 프런티어(새로운 개척분야)’로 인식하고 있다”며 “인터넷 사이버 이슈가 (한미 대통령이) 다음 달 워싱턴에서 만났을 때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등이 일으킨 사이버 테러 위협의 심각성도 강조했다. 케리 장관은 “나는 매일 해킹의 대상이 되는 기관의 수장”이라고 운을 뗀 뒤 “한국과 미국은 모두 심각한 사이버 공격을 국가 행위자와 비국가 행위자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미국은 (이에 대해) 필요한 모든 수단, 경제·외교적 도구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며 “소니픽처스 해킹을 일으킨 북한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제재는 그런 도구를 사용한 사례”라며 국제사회의 공동 대처를 촉구했다. 국제적인 대처를 위한 조직을 만들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사이버 공격을 막는 국제법에 근거를 둔 믿을 만한 틀을 만들기 위해 (국제적) 협의를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어떤 국가도 온라인에서 다른 국가의 핵심적 인프라를 공격하면 안 되고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응을 허용하며 △사이버 범죄를 막고 △모든 국가는 자국에서 발생하는 사이버 공격 예방에 노력해야 하며 △모든 국가는 사이버 공격의 피해국을 도와야 한다는 국제사회 사이버 안전의 5대 원칙을 제시했다. 1996년 미 상원 커뮤니케이션소위원장을 맡았던 케리 장관은 인터넷 표현의 자유는 독재가 막을 수 없는 권리임을 강조했다. 그는 “역사 전반에 걸쳐 인간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욕구를 표출하는 것을 봤다. 이는 혁명의 불꽃이 됐다”며 “냉전 때 철의 장막 뒤에서 라디오 방송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욕구를 봤다”고 말했다. 또 “억압이 발명한 것은 하나도 없다. 자유가 없으면 문명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는 페달 없는 자전거와 같다”고 덧붙였다.
“(가수) 싸이, 케이팝, 비…빔…밥, 뽀…로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8일 재단법인 인촌기념회, 고려대, 동아일보사가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주최한 제24회 인촌기념강좌에서 어색한 발음이지만 또렷한 한국어로 이렇게 말하자 좌중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케리 장관은 “한반도 안보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한국과 미국이 함께 고민하는 이익과 함께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 (공유하는) 특별한 관계가 많다”고 한 뒤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이어 “보좌진이 (강연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 (말)춤을 추면 어떻겠느냐고 했지만 내가 ‘아니다. 강남 스타일이 나온 건 2012년이니 한물갔다’고 했다”고 말하자 강연장에 유쾌한 함박웃음이 터졌다.
케리 장관은 “한국은 수년 전 글로벌 정보기술(IT)의 리더가 되기로 했고 그 선택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런 대학(고려대)에서 젊은이들에게 디지털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카카오톡’ 등을 거론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에 힘입어 한국은 인터넷 기술의 성공 사례와 동일시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서울에 대해 “매우 아름다운 도시에 다시 와 기쁘다. 서울에 올 때마다 깊은 인상을 받는다.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다. 외교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서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강연장 맨 앞자리에 참석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해 “제 친구인 마크를 잠깐 소개하겠다”며 “최근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보여줬다. 외교관은 외교 최전선에서 위험을 안고 살지만, 마크는 일을 하려는 의지가 흔들린 적이 없다. 좋은 모범을 보여준 마크의 리더십에 감사한다”고 최근 피습 사건을 거론했다.
강연은 22분으로 예정됐지만 50분을 넘겼다. 이번 인촌기념강좌에는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사장 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이용훈 인촌기념회 이사장, 염재호 고려대 총장,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 등 각계각층의 인사와 고려대 학생 등 500여 명이 참석해 인촌기념관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케리 장관은 강좌 뒤 기념관 로비에서 고려대 학생 15명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이날 인촌기념관 주변에는 청와대 경호실과 미국대사관 직원, 경찰 등 경호 인력이 촘촘히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강연을 듣기 위해 검색대를 통과하고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