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hon Kim Sungsoo -A Korean Nationalist Entrepreneur 
 
 
 
 


한글 맞춤법과 仁村-2

李熙昇 회고

한글맞춤법 통일안의 필요성을 느끼고 당시의 한글학자 권덕규. 김윤경. 박현식. 신명균. 이극로. 이병기. 이윤재. 이희승. 장지영. 정열모. 최현배. 정인섭 등 조선어학연구회 회원들이 통일된 맞춤법을 만들자고 결의한 것은 1930년 12월 중순이었다. 그들은 3년 동안의 연구끝에 1933년 10월29일 최종안을 내놓았다. 그 연구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仁村의 관심과 재정적인 뒷받침 때문이었다고 이희승은 술회하고 있다.

仁村 선생은 조선어학회와 직접적인 관계는 맺고 계시지 않았지만 기회 있는 대로 음으로 양으로 원조를 아끼지 않으셨다. 단번에 많은 금액을 내주신 일은 없으나 일이 있을 때마다 가서 청하면 거절하시는 일이 없으셨다. 이극로가 간사장으로 학회 일을 맡았을 때도 그랬고, 내가 간사장이었을 때도 그랬다. 지금 기억에 남는 것으로 표준어 사정위원회를 우이동 봉황각에서 열었을 때 仁村 선생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거액이었던 3백원을 쾌척하셨고, 철자법 위원회는 제1회 개성, 제2회 인천, 제3회 서울 화계사에서 열었을 때도 그때마다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내주셨던 것으로 안다.
이러한 仁村을 古下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사업도 급한데 그거 천천히 하면 안돼?"

"그것보다 시급한 일은 없네"

"무슨 말이여?"

"우리 민족에게 말과 글이 있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자네 모르지? 일본 사람들 보게, 말은 있어도 고유한 문자는 없네. 서양 사람들도 말은 있지만 고유한 문자가 있는 나라는 별로 없지. 알파벳을 모두 사용하지. 허지만 우리에게는 고유한 문자가 있네. 내가 영국에 갔을 때지. 내가 신문을 하고 있다니가 한다하는 지식인들이 내게 묻더구먼. 조선은 중국어를 쓰느냐, 아니면 일본어를 쓰느냐. 문자는 어느 나라 걸 쓰느냐? 그렇게 묻더구먼?"

"무식한 친구들!"

"당연하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 가방 속에서 우리 동아일보를 꺼내 보여 주었지. 이것이 우리나라 문자이고 고유한 말이다. 그랬더니 모두 뒤로 자빠지는 거야. 고유한 말과 문자를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몇 안 되는데 그렇게 유구한 문화국인 줄 몰랐다고 말여"

"맞어. 놀라왔겠지?"

"그런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표기법 하나 통일이 안 되었다는 건 부끄러운 일 아닌가? 그래서는 안 되네. 우리 신문이 통일된 표기법을 사용하고 계몽해야 하네"

"뜻은 알겠네만 어려운 일이지. 새 맞춤법으로 우리가 맨 먼저 표기를 한다고 해서 다른 신문 잡지가 호응할까? 그게 두렵군. 게다가 새 철자법을 사용하자면 새 활자를 주조해야 한단 말여. 그 돈도 막대할 텐데?"

"돈 걱정은 말게. 민족 백년대계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돈 아까와 할 필요 뭐 있는가? 공무국에 알아 봤더니 7만원이면 새 활자로 바꿀 수 있다더구먼? 우리가 솔선수범하는 거여"

그것이 모험인 줄 알면서 이른바 민족문화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仁村은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드디어 동아일보가 새 맞춤법 통일안에 따라 새 철자법으로 신문을 제작하자 경향 각지의 모든 신문과 잡지가 뒤를 이어 채택함으로써 仁村의 뜻은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요구하고 언어까지 말살하려 들 때 우리 문자의 재정비로 맞선 仁村의 기개는 높이 살 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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